독일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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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주는 독일 연방 공화국을 구성하는 16개의 연방주를 의미한다. 독일은 연방 국가로, 각 주는 고유한 권한을 가지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다. 신성 로마 제국 시대에는 수많은 소국으로 구성되었고, 나폴레옹 전쟁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등을 거치면서 영토와 주의 수가 변화했다. 1949년 독일 연방 공화국 수립 이후, 각 주는 연방 정부와 권한을 분담하며, 자체적인 정부와 의회를 갖는다. 독일의 주는 행정 구역으로, 도시 주, 자유 주, 그리고 다양한 행정 단위로 세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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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후 구 동독 지역에 편입된 신연방주는 경제 재건, 인구 변화, 사회 통합 등의 과제를 안고 있으며, 서독 지역과의 문화적, 정신적 차이와 경제적 격차가 존재하고 좌파당과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특징을 가진다. - 독일의 주 -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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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은 독일의 행정 구역 단위 중 하나로, 주(Land)의 하위 행정 구역이며, 1808년 처음 설치되어 나치 독일 시대를 거쳐 현재 4개 주에서 19개가 존재한다.
독일의 주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종류 | 연방주 |
소속 국가 | 독일 |
현재 개수 | 16 |
인구 범위 | 682,986명 (브레멘) – 17,932,651명 (NRW) |
면적 범위 | 161.92 sq mi (419.37 km²) (브레멘) – 27,239.29 sq mi (70,549.18 km²) (바이에른) |
정부 | 주 정부 |
하위 행정 구역 | 정부 관구 군 관구 자치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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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정치 | |
헌법 | 역사 법 |
입법부 | 독일 연방상원 의장: 라이너 하젤로프 (기민련) 부의장: 디트마르 보이트케 (사민당) 독일 연방의회 의장: 볼프강 쇼이블레 (기민련) 합동위원회 연방회의 |
행정부 | 연방총리 (정부수반) 올라프 숄츠 (사회민주당) 연방대통령 (국가원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사회민주당) 연방제 행정 구역 |
사법부 | 연방 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일반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 연방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장: 스테판 하바스 |
정당 | 기독교민주연합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독일을 위한 대안 좌파당 동맹 90/녹색당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 |
대외 관계 | 대외 정책 |
명칭 | |
독일어 | Land (Deutschland) |
복수형 독일어 | Länder |
단수형 독일어 | Bundesland |
역사 | |
재건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재건 |
참고 자료 | |
참고 자료 | 연방주의 |
2. 역사
연방제는 독일 역사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수많은 소국들로 구성되었으며, 1796년경에는 300개가 넘는 주들이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1796~1814) 기간 동안 영토의 수는 크게 감소했다. 빈 체제 회의(1815) 이후 39개 주가 독일 연방을 형성했다. 이 연방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해체되었는데,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키고 오스트리아를 독일 주들의 문제에서 제외시켰다.
나폴레옹 전쟁부터 빈 체제 회의까지 영토 수는 약 300개에서 39개로 감소하는 등 영토 경계는 군사적 갈등과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재편되었다. 1866년 프로이센은 하노버, 나사우, 헤세-카셀, 프랑크푸르트 자유시를 병합했다. 1867년 7월 1일, 프로이센과 독일 북부 및 중부의 다른 주들은 연방국가인 북독일 연방으로 통합되었다.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바덴, 헤세-다름슈타트 등 5개의 남부 독일 주 중 4개 주는 프로이센과 군사 동맹을 맺었지만, 오스트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1870~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이 4개 주는 북독일 연방에 합류했고, 그 결과 북독일 연방은 독일 제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의회와 연방평의회는 프로이센 국왕에게 (1871년 1월 1일부터) 독일 황제의 칭호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독일 제국에는 25개 주(그중 3개는 한자 도시)와 엘자스-로렌 제국 영토가 포함되었다. 제국 내에서 영토의 65%와 인구의 62%가 프로이센 주에 속해 있었다.
베르사유 조약의 영토 손실 이후, 남아 있는 주들은 새로운 독일 연방의 공화국으로 남았다. 새로운 독일 영토의 경계 재획정에 대한 논의는 1919년 새로운 헌법에 대한 논의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바이마르 헌법의 아버지인 후고 프뢰스는 독일 제국을 14개의 거의 동일한 크기의 주로 나누는 계획을 초안했지만, 주들의 반대와 정부의 우려로 인해 거부되었다. 헌법 제18조는 독일 영토의 새로운 경계 설정을 가능하게 했지만, "영토 변경에 대해 결정하려면 제출된 표의 5분의 3 이상과 적어도 인구의 과반수가 필요하다."라는 높은 장벽을 설정했다.
독일어에서 'Länderde'('주')라는 용어는 1919년 바이마르 헌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는 독일 제국의 주들을 'Staatende'('주')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Bundeslandde'(연방 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용어는 1919년 헌법이나 현재 헌법에는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바이에른(1919년부터), 작센(원래 1919년부터, 1990년부터 다시), 튀링겐(1994년부터) 세 개의 주는 자신들을 '자유주(Freistaat)en'('자유주', '공화국'을 의미하는 오래된 독일 용어)이라고 부른다.
1933년까지 독일 주들의 구성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단 네 번뿐이었다. 1920년 7개의 튀링겐 주가 합병되었고, 이때 코부르크는 바이에른을 선택했으며, 피르몬트는 1922년 프로이센에 합류했고, 발덱은 1929년에 합류했다. 지배적인 프로이센을 더 작은 주로 분할하려는 후속 계획들은 정치적 상황이 주 개혁에 유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1933년 1월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한 후, 주(Länder)는 점차 폐지되었고, 나치 정권 하에서 Gleichschaltungde 과정을 통해 나치의 지방으로 축소되었으며, 주는 행정적으로 나치 가우 시스템에 의해 크게 대체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세 가지 변화는 다음과 같다. 1934년 1월 1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은 이웃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와 통합되었고, 1937년 대함부르크 법에 의해 도시 국가의 영토가 확장된 반면, 뤼베크는 독립성을 잃고 프로이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연합군 점령 기간 동안, 연합군 군정에 의해 내부 국경이 재조정되었다. 점령 지역 네 곳 모두에 새로운 주들이 설립되었는데, 미군 점령 지역에는 브레멘, 헤센, 뷔르템베르크-바덴, 바이에른이, 영국 점령 지역에는 함부르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이, 프랑스 점령 지역에는 라인란트팔츠, 바덴, 뷔르템베르크-호헨촐레른과 나중에 특별 지위를 부여받은 사르란트가, 소련 점령 지역에는 메클렌부르크(-포어폼머른), 브란덴부르크, 작센, 작센안할트, 튀링겐이 설립되었다. 어떤 주도 인구나 영토의 30%를 넘지 않았는데, 이는 과거 프로이센처럼 어떤 하나의 주가 독일 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에 있던 이전 독일 영토는 폴란드 또는 소련의 통치하에 있었지만, 적어도 상징적으로 1960년대까지 주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들은 당시 서독의 관할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 새로운 주를 설립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1954년 파리 협정에 따라 서독은 (제한적인) 주권을 회복했다. 그 결과 8개의 주민투표 청원이 제기되었고, 그중 6개가 성공하여 바덴 재건등의 안건이 통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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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서부에서는 프랑스와 미국의 점령 구역 경계가 카를스루에-슈투트가르트-울름 고속도로(현재 A8호선)를 따라 설정되었기 때문에 영토 개편이 최우선 과제로 여겨졌다. 1951년 12월 9일 네 개의 다른 투표구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고, 그중 세 곳에서 합병을 승인했다(총 투표 결과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남바덴은 거부했지만 무효화되었다). 1952년 4월 25일, 세 개의 전 주(州)가 합병하여 바덴뷔르템베르크를 형성했다.
1990년 동서독 통일과 더불어 1952년 당시의 5개 주(브란덴부르크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작센주, 작센안할트주, 튀링겐주)가 부활되었고, 동베를린은 베를린 주에 편입되었다.[25]
현재 독일 연방 공화국은 16개의 연방주로 구성되는데, 인구면에서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가, 면적면에서는 바이에른주가 가장 크다.[25]
2. 1.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연방
연방제는 독일 역사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수많은 소국들로 구성되었으며, 1796년경에는 300개가 넘는 주들이 있었다. 영토의 수는 나폴레옹 전쟁(1796~1814) 기간 동안 크게 감소했다. 빈 체제 회의(1815) 이후 39개 주가 독일 연방을 형성했다. 이 연방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해체되었는데,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키고 오스트리아를 독일 주들의 문제에서 제외시켰다.영토 경계는 군사적 갈등과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재편되었다. 나폴레옹 전쟁부터 빈 체제 회의까지 영토 수는 약 300개에서 39개로 감소했다. 1866년 프로이센은 하노버, 나사우, 헤세-카셀,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자유시를 병합했다. 프로이센과 독일 북부 및 중부의 다른 주들은 1867년 7월 1일에 연방국가인 북독일 연방으로 통합되었다. 5개의 남부 독일 주(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바덴, 헤세-다름슈타트) 중 4개 주가 프로이센과 군사 동맹을 맺었지만 오스트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1870~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이 4개 주는 북독일 연방에 합류했고, 그 결과 북독일 연방은 독일 제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의회와 연방평의회는 프로이센 국왕에게 (1871년 1월 1일부터) 독일 황제의 칭호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독일 제국에는 25개 주(그중 3개는 한자 도시)와 엘자스-로렌 제국 영토가 포함되었다. 제국 내에서 영토의 65%와 인구의 62%가 프로이센 주에 속해 있었다.
2. 2. 북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
연방제는 독일 역사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수많은 소국들로 구성되었으며, 1796년경에는 300개가 넘는 주들이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1796~1814) 기간 동안 영토의 수는 크게 감소했다. 빈 체제 회의(1815) 이후 39개 주가 독일 연방을 형성했다. 이 연방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해체되었는데,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키고 오스트리아를 독일 주들의 문제에서 제외시켰다.나폴레옹 전쟁부터 빈 체제 회의까지 영토 수는 약 300개에서 39개로 감소하는 등 영토 경계는 군사적 갈등과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재편되었다. 1866년 프로이센은 하노버, 나사우, 헤세-카셀, 프랑크푸르트 자유시를 병합했다. 1867년 7월 1일, 프로이센과 독일 북부 및 중부의 다른 주들은 연방국가인 북독일 연방으로 통합되었다.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바덴, 헤세-다름슈타트 등 5개의 남부 독일 주 중 4개 주는 프로이센과 군사 동맹을 맺었지만, 오스트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1870~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이 4개 주는 북독일 연방에 합류했고, 그 결과 북독일 연방은 독일 제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의회와 연방평의회는 프로이센 국왕에게 (1871년 1월 1일부터) 독일 황제의 칭호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독일 제국에는 25개 주(그중 3개는 한자 도시)와 엘자스-로렌 제국 영토가 포함되었다. 제국 내에서 영토의 65%와 인구의 62%가 프로이센 주에 속해 있었다.
2. 3.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시대
독일어에서 'Länderde'('주')라는 용어는 1919년 바이마르 헌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는 독일 제국의 주들을 'Staatende'('주')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Bundeslandde'(연방 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용어는 1919년 헌법이나 현재 헌법에는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바이에른(1919년부터), 작센(원래 1919년부터, 1990년부터 다시), 튀링겐(1994년부터) 세 개의 주는 자신들을 '자유주(Freistaat)en'('자유주', '공화국'을 의미하는 오래된 독일 용어)이라고 부른다.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17개 주 중 6개 주는 여전히 존재한다(부분적으로 경계가 다르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의 다른 11개 주는 서로 합병되거나 더 작은 단위로 분리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주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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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할트 | 작센안할트 주의 일부 |
바덴 |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일부 |
브라운슈바이크 | 니더작센의 일부 |
리페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일부 |
뤼베크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일부 |
메클렌부르크슈베린과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의 일부 |
올덴부르크 | 니더작센의 일부이며, 이전의 외딴 지역은 이웃 주인 라인란트팔츠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 속함 |
프로이센 | 분할되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란트팔츠, 작센안할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가 됨. 이전의 프로이센 주인 브란덴부르크, 작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하노버는 각각 브란덴부르크, 작센-안할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니더작센 주의 핵심을 형성. 프로이센의 베스트팔렌 주와 라인 주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대부분의 영토를 제공했고, 라인 주는 라인란트팔츠 주 영토의 약 절반을 제공. 프로이센의 헤세나사우 주의 대부분은 기존의 헤센 주와 합병. 다른 주와 국경을 접한 일부 지역은 국경을 접한 주에 합병. 또한 프로이센은 다른 주로 둘러싸인 외딴 지역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은 주변 주의 일부가 됨. 바이에른을 제외한 모든 주는 현재 이전 프로이센 자유주의 영토를 가지고 있음. 나이세 강과 오데르 강 동쪽에 있는 다른 이전 프로이센 영토는 1945년에 상실되어 현재 폴란드 또는 러시아의 일부. (실레시아(상실레시아와 하실레시아), 폼머른, 서프로이센-포제넨, 동프로이센). |
샤움부르크리페 | 니더작센의 일부 |
뷔르템베르크 |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일부 |
베르사유 조약의 영토 손실 이후, 남아 있는 주들은 새로운 독일 연방의 공화국으로 남았다. 새로운 독일 영토의 경계 재획정에 대한 논의는 1919년 새로운 헌법에 대한 논의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바이마르 헌법의 아버지인 후고 프뢰스는 독일 제국을 14개의 거의 동일한 크기의 주로 나누는 계획을 초안했지만, 주들의 반대와 정부의 우려로 인해 거부되었다. 헌법 제18조는 독일 영토의 새로운 경계 설정을 가능하게 했지만, "영토 변경에 대해 결정하려면 제출된 표의 5분의 3 이상과 적어도 인구의 과반수가 필요하다."라는 높은 장벽을 설정했다. 사실, 1933년까지 독일 주들의 구성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단 네 번뿐이었다. 1920년 7개의 튀링겐 주가 합병되었고, 이때 코부르크는 바이에른을 선택했으며, 피르몬트는 1922년 프로이센에 합류했고, 발덱은 1929년에 합류했다. 지배적인 프로이센을 더 작은 주로 분할하려는 후속 계획들은 정치적 상황이 주 개혁에 유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1933년 1월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한 후, Länderde는 점차 폐지되었고, 나치 정권 하에서 Gleichschaltungde 과정을 통해 나치의 지방으로 축소되었으며, 주는 행정적으로 나치 가우 시스템에 의해 크게 대체되었다. 세 가지 변화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1934년 1월 1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은 이웃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와 통합되었고, 1937년 대함부르크 법에 의해 도시 국가의 영토가 확장된 반면, 뤼베크는 독립성을 잃고 프로이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일부가 되었다.
2. 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9년 독일 연방 공화국을 구성한 것은 주(州, ''Länder'')들이었다. 이는 전후 오스트리아와 대조적인데, 오스트리아에서는 국가 연방(''Bund'')이 먼저 구성되고 나서 개별 주들이 그 연방 국가의 단위로 만들어졌다.독일어에서 ''Länder''("주들")라는 용어는 1919년 바이마르 헌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는 독일 제국의 주들을 ''Staaten''("주들")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Bundesland''(연방 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지만, 공식적으로 이 용어는 1919년 헌법에도, 현재 헌법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바이에른(1919년부터), 작센(원래 1919년부터, 그리고 1990년부터 다시), 튀링겐(1994년부터)의 세 주는 자신들을 ''자유주(Freistaat)en''("자유주들", "공화국"을 의미하는 오래된 독일 용어)이라고 부른다.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17개 주 중 6개 주는 여전히 존재한다(부분적으로 경계가 다르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의 다른 11개 주는 서로 합병되거나 더 작은 단위로 분리되었다.
- 안할트는 현재 작센안할트 주의 일부이다.
- 바덴은 현재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일부이다.
- 브라운슈바이크는 현재 니더작센의 일부이다.
- 리페는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일부이다.
- 뤼베크는 현재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일부이다.
- 메클렌부르크슈베린과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는 현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의 일부이다.
- 올덴부르크는 현재 니더작센의 일부이며, 이전의 외딴 지역은 이웃 주인 라인란트팔츠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 속한다.
- 프로이센은 분할되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란트팔츠, 작센안할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가 되었다. 이전의 프로이센 주인 브란덴부르크, 작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하노버는 각각 브란덴부르크, 작센안할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니더작센 주의 핵심을 형성했다. 프로이센의 베스트팔렌 주와 라인 주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대부분의 영토를 제공했고, 라인 주는 라인란트팔츠 주 영토의 약 절반을 제공했다. 프로이센의 헤세나사우 주의 대부분은 기존의 헤센 주와 합병되었다. 다른 주와 국경을 접한 일부 지역은 국경을 접한 주에 합병되었다. 또한 프로이센은 다른 주로 둘러싸인 외딴 지역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주변 주의 일부가 되었다. 바이에른을 제외한 모든 주는 현재 이전 프로이센 자유주의 영토를 가지고 있다. 나이세 강과 오데르 강 동쪽에 있는 다른 이전 프로이센 영토는 1945년에 상실되어 현재 폴란드 또는 러시아의 일부이다. (각각 실레시아(상실레시아와 하실레시아), 폼머른, 서프로이센-포제넨, 동프로이센).
- 샤움부르크리페는 현재 니더작센의 일부이다.
- 뷔르템베르크는 현재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일부이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독일에서는 주들 간의 경계 변경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4] 아서 B. 건릭스(Arthur B. Gunlicks)는 독일에서 국경 개혁에 대한 주요 주장을 "독일의 이중 연방제는 자체 재원으로 법률을 시행하고 비용을 지불할 행정적 및 재정적 역량을 갖춘 강력한 주를 필요로 한다. 너무 많은 주는 주들 간의 조정과 연방과의 조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라고 요약한다.[5]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제안이 실패했으며, 영토 개혁은 독일 정치와 대중 인식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는 주제이다.[6]
1933년 1월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한 후, 주(Länder)는 점차 폐지되었고, 나치 정권 하에서 Gleichschaltungde 과정을 통해 나치의 지방으로 축소되었으며, 주는 행정적으로 나치 가우 시스템에 의해 크게 대체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세 가지 변화는 다음과 같다. 1934년 1월 1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은 이웃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와 통합되었고, 1937년 뤼베크는 독립성을 잃고 프로이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일부가 되었다.
1954년 파리 협정에 따라 서독은 (제한적인) 주권을 회복했다. 이는 제29조 2항에 명시된 1년 기간의 시작을 알렸다. 결과적으로 8개의 주민투표 청원이 제기되었고, 그중 6개가 성공했다.
- 올덴부르크 자유주 재건 (12.9%)
- 샤움부르크리페 자유주 재건 (15.3%)
- 코블렌츠와 트리어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편입 (14.2%)
- 라인헤센의 헤센주 재편입 (25.3%)
- 몬타바우어의 헤센주 재편입 (20.2%)
- 바덴 재건 (15.1%)
마지막 청원은 당초 연방 내무부 장관에 의해 1951년 주민투표를 근거로 거부되었다. 그러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거부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1951년 주민투표가 제29조에서 규정한 것과 다른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바덴 주민들은 새로운 주민투표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1951년 주민투표 결과는 바덴 주민 대다수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했다.
두 개의 팔츠 청원 (바이에른주 재편입 및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편입)은 각각 7.6%와 9.3%의 득표율로 실패했다. 뤼벡, 게스하흐트, 린다우, 아흐베르크와 62개의 헤센 지역 사회 등의 추가 청원 요청은 연방 내무부 장관에 의해 이미 부적격으로 기각되었거나 린다우 사례와 같이 철회되었다. 뤼벡 사례에 대한 거부는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 확인되었다.
2. 5. 독일 통일과 현재
1990년 동서독 통일과 더불어 1952년 당시의 5개 주(브란덴부르크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작센주, 작센안할트주, 튀링겐주)가 부활되었고, 동베를린은 베를린 주에 편입되었다.[25] 옛 동독의 5개 신연방주의 하급행정단위인 시·읍·면의 조직은 소멸된 상급 행정단위인 지구의 하급행정단위를 변동없이 활용하고 있다.[25]독일 연방 공화국은 16개의 연방주로 구성되는데, 인구면에서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가, 면적면에서는 바이에른주가 가장 크다.[25]
3. 연방주의
연방제는 독일 역사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수많은 소국들로 구성되었으며, 1796년경에는 300개가 넘는 주들이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1796~1814) 기간 동안 영토의 수는 크게 감소했다. 빈 체제 회의(1815) 이후 39개 주가 독일 연방을 형성했다. 이 연방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해체되었는데,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키고 오스트리아를 독일 주들의 문제에서 제외시켰다.
영토 경계는 군사적 갈등과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재편되었다. 나폴레옹 전쟁부터 빈 체제 회의까지 영토 수는 약 300개에서 39개로 감소했다. 1866년 프로이센은 하노버, 나사우, 헤세-카셀,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자유시의 주권 국가들을 병합했다. 프로이센과 독일 북부 및 중부의 다른 주들은 1867년 7월 1일에 연방국가인 북독일 연방으로 통합되었다. 5개의 남부 독일 주(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바덴, 헤세-다름슈타트) 중 4개 주가 프로이센과 군사 동맹을 맺었지만 오스트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1870~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이 4개 주는 북독일 연방에 합류했고, 그 결과 북독일 연방은 독일 제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의회와 연방평의회는 프로이센 국왕에게 (1871년 1월 1일부터) 독일 황제의 칭호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독일 제국에는 25개 주(그중 3개는 한자 도시)와 엘자스-로렌 제국 영토가 포함되었다. 제국 내에서 영토의 65%와 인구의 62%가 프로이센 주에 속해 있었다.
베르사유 조약의 영토 손실 이후, 남아 있는 주들은 새로운 독일 연방의 공화국으로 남았다. 1933년 1월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한 후, Länderde는 점차 폐지되었고, 나치 정권 하에서 Gleichschaltungde 과정을 통해 나치의 지방으로 축소되었으며, 주는 행정적으로 나치 가우 시스템에 의해 크게 대체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연합군 점령 기간 동안, 연합군 군정에 의해 내부 국경이 재조정되었다. 점령 지역 네 곳 모두에 새로운 주들이 설립되었는데, 어떤 주도 인구나 영토의 30%를 넘지 않았는데, 이는 과거 프로이센처럼 어떤 하나의 주가 독일 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동서독 통일과 더불어 1952년 당시의 5개 주(브란덴부르크주·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작센주·작센안할트주·튀링겐주)로 부활되었고, 동베를린은 베를린 주에 편입되었다.[25]
3. 1. 연방과 주의 권한 배분
독일 연방과 주의 권한 배분은 전통적인 독일 분권주의를 살려 기본법으로 정하고 있다. 입법에 관해서는 연방만이 할 수 있는 사항, 연방과 주가 함께 할 수 있는 사항, 연방이 원칙적 규정만을 만드는 사항 등이 규정되어 있다.[25] 연방정부에서 하는 일은 외교·군사·우편·철도·통화·관세·통상·사법·전쟁처리 등인데, 연방법의 집행은 주에 위임되기 때문에 주는 사법상·행정상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연방정부의 여당과 주정부의 여당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고, 특히 각 주정부의 대표인 연방참의원의 경우에는 어떤 정당을 대표한다기보다는 지역 대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3. 2. 연방참의원
연방 정부의 여당과 주 정부의 여당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으며, 특히 각 주정부의 대표인 연방참의원의 경우에는 어떤 정당을 대표한다기보다는 지역 대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25]3. 3. 재정 조정 제도
독일 연방 공화국의 각 주는 재정적으로 자립적이지만, 주 간의 재정력 차이를 조정하기 위한 재정 조정 제도가 존재한다. 이는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 그리고 주 정부 상호 간에 이루어진다.4. 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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